야마가따 트윅스터..Yamagata Tweakster

야마가따 트윅스터..Yamagata Tweakster

....

야마가따 트윅스터는 어떤 사람인지, 언제부터 활동했는지,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을 만든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조교로 일을 할 당시 한예종학생이 기획하는 파티에서 디제이를 해줄 수 있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흔쾌히 응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일일 디제이지만 이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이름이 야마가타 트윅스터였다. 사실 야마가타는 일본의 지명으로서 사회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주목받기도 하는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이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가 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야마가타라는 지명이 더 각인되어 문득 야마가타라는 이름이 떠올랐던 것 같다. 그리고 트윅스터는 말 자체에서 춤추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어감이 재미있어서 야마가타 뒤에 붙여서 사용했다. 2005년 당시에는 아마추어 증폭기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청받은 파티에서 디제이를 한 이후로는 잘 사용하지 않다가. 2008년부터 정식으로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럼, 그전에 활동했던 아마추어 증폭기는 무엇이며, 현재 야마가타 트윅스터 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굳이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아마추어증폭기와 야마가타트윅스터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전자음에 댄서블한 리듬 음악에 퍼포먼스를 하는 형식이고, 아마추어증폭기는 혼자 기타를 스톡킹 하면서 노래하는 형식이었다. 대부분의 노래 주제가 남성의 솔직한 감정에 중점을 맞춰서 만들었던 노래들이다. 지극히 개인적이었고, 남성을 주제로 한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결혼이후에는 아마추어증폭기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의 부고도 함께 겪으면서 슬픔을 춤으로 완화시키고 싶은 마음도 더 해 지면서 야마가타트윅스터라는 이름으로 정식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 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추어 증폭기의 음악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면 야마가타트윅스터의 음악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로 다루려고 한다. 개인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비롯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종종 공식적인 자리에 아들과 함께 오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평소 궁금했었는데, 현재의 아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아이들은 아빠의 음악에 대해 어떤 반응인지?

아내는, 헤비(대구에 있는 라이브 공연장)에서 처음 만났다. 아내가 나를 처음 접한 것은 음악이 아니라 영화로 알게 되었다. 아마추어증폭기로 활동할 당시, 자체 제작한 뮤직비디오 형식의 단편영화를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상영 했었다. 그 영화를 상영했던 장소가 계명대학교였는데, 당시 아내가 그 학교 학생이었다. 우연히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난 후 미니홈피(현재의 페이스북과 비슷한 것)를 찾아서 방명록에 ‘영화 잘 봤습니다.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연락하며 지내다가 헤비에서 하는 공연에 초대를 하게 되면서 만남이 시작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당시 상영했던 영화제목은 “당신은 공중에서 내려오지 마라 "You don’t come down in the air” 이며 배경음악은 아마추어 증폭기의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였다. 아이들은 내 음악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음악을 틀어놓으면 방에 들어가 버리곤 한다. 하하

..

Could you tell me who Yamagata Tweakster is, when you started working as a DJ, and what special meaning your name has?

The name Yamagata Tweakster was made by chance. Back in 2005, I was working at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as a teaching assistant. One day, I was asked if I could DJ for a party hosted by university students. I was willing to take the chance, of course, but I figured a DJ name was definitely needed, even if it was just for one day. Yamagata is the area where an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is held. Some of the movies shown there deal with practical issues in today’s society. One of director Byun YoungJoo’s works, Lower Voice, won the award at that film festival. The name might suddenly have come to mind when I was choosing my name. Also, I picked up Tweakster because it reminded me of dancing and sounded fun. I had been already called Amateur Amplifier before the DJing gig, but I officially decided to use Yamagata Tweakster instead in 2008.

What does Amateur Amplifier mean? And what do you feel is the difference between that name and Yamagata Tweakster? Also, why you decide to make the change?

There is a definite gap between them. Yamagata Tweakster is for a kind of danceable and rhythmical music that’s more electronic. On the other hand, Amateur Amplifier is a suitable name for solo performances. Most of the song titles are aimed at men's emotions and they are extremely personal. After I got married I lost interest in working as Amateur Amplifier. About the same time I received the news of my father’s death, so I tried to get over my sorrow through dancing. So at that time I made the official move to Yamagata Tweakster. The biggest difference is that Amatuer Amplifier handles personal stories, but Yamagata Tweakster focuses on social issues. I think that music originates in others, not individuals.

I have sometimes seen you attending formal occasions with your son. How did you and your wife meet and how do your children feel about your music?

I met my wife for the first time at a live music venue in Daegu called Heavy. We got to know each other because of films, not music. While I was working as Amatuer Amplifier I made a short film, like a music video, and it was playing at Daegu Short Film Festival. The film was made in Keimyung University, where my wife used to study. After she watched the film, she visited my personal Cyworld page (similar to Facebook) and wrote some comments saying that she really enjoyed the film. After that we got closer day by day, and I finally got in a relationship with her on the day I invited her to my performance at Heavy. After that, we got married.

The title of the film at the time was “You Don’t Come Down in the Air.” Its soundtrack was taken from Amateur Amplifier’s music.  As for my children, they don’t seem to be interested in my music. They just go to their room if I turn on my songs (laughs).

....

....

영화도 만들고, 뮤직비디오도 자체 제작했다니 많이 놀랍다. 음악 외에도 다른 것을 해본 적이 있는지?

원래는 고향이 대구다. 서울로 이사를 온 것은 2003년이었는데 대학교 졸업 후 상경했었고 그전에는 계속 대구에서 살았었다. 대학시절에는 음악과는 무관했고 영화에 관심이 많아 영화제작이나, 시네마테크등 영화와 관련된 일들을 했었다. 지금처럼 음악활동을 하게 될 줄을 그때는 몰랐었다. 공연을 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는데, 영화를 촬영하고 나면 뒷풀이 장소로 가던 곳이 ‘쟁이’라는 곳이었다.

쟁이를 운영하던 사장님과 친해지면서 매주 토요일,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작은영화제를 진행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제안을 받아주었다. 영화만 상영되는 것은 재미없게 느껴져, 친구 한명과 <허무혼과 은색>이라는 이름으로 퍼포먼스공연까지 이어서 했었다. 그때는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없어서 베이스의 아무 줄이나 튕기며 즉흥적인 말소리를 뱉어내는 형식이었다. 너무 대책 없는 모습에 함께하던 친구는 팀에서 금방 나갔지만 영화제와 공연은 1년 정도 지속 되었었고, 지역신문이나 지역방송에서 촬영을 해가기도 했다. 공연을 한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다가 음악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1년경 부터이다. 2000년 즈음에 그 쟁이사장님과 함께 벤처기업을 만들자고 서울로 온 적이 있다. 사업가 체질을 아니었던 터라, 남을 설득하고 무언가 설명하는 것이 서툴렀고, 나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큰 포부를 안고 상경했지만 혼자서 포기하고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 그때 좌절감이나 절망감이나 허무함이 들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에 이야기를 노래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만들고 나서 공연을 바로하지는 않았었고, 2003년 서울로 다시 상경하면서 공연을 시작했었다.

..

It’s very surprising that you make movies and music videos all by yourself. Apart from that, is there anything you do?

My hometown is Daegu, actually. I moved to Seoul in 2003 after I graduated university. Music wasn’t one of my interests during my school days. Instead, I was keen on film production and doing stuff that was related to film-making, such as cinematheque. I didn’t expect to work in the music industry back then.

I started performing music accidentally. There was a bar named Jeng-iy that I usually went to after shooting. I became friends with the owner of Jeng-iy and asked him if I could host a short film festival for independent movies every Saturday. He didn’t hesitate to accept my offer. I thought it might be a bit boring only for a movie to be shown, so a friend of mine and I made a performance under the name of Souls of the Futility and Silver. At that time, we didn’t have instruments to play; we just flicked strings on a bass guitar, uttering improvisatory songs. Because of these irresponsible actions, my friend left our team right away. However, my performance was continued at film festivals throughout the year. Also, our regional broadcasting and newspaper company visited me to do an interview. That was my first time performing on air.

....

266433_170923469637161_6241408_o.jpg

....

주제를 조금 바꿔서, 얼마 전 직접 출연한 영화 파티51 이 개봉하여 상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어떤 내용이며, 어떻게 촬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파티51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두리반 투쟁’과 ‘자립음악생산조합’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두리반은 홍대인근의 평범한 작은 식당으로, 2010년 건물철거를 빌미로 건물주로 부터 강제철거 통보를 받게 되었다. 용역들이 찾아오고 가게내부는 많이 손상되었다. 하지만, 두리반을 운영하던 부부내외는 이렇게 빼앗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 가게로 들어가면서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 사실을 처음 기사로 접했었다. 그 기사를 보니 *용산참사가 떠올랐고, 용산같은 일이 홍대 앞에서 벌여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주변음악인들과 우리는 음악을 하니까 공연을 하자, 공연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줄 것이고 함께 해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공연을 기획했고 그것이 첫번째 자립음악회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자립음악회는 매주토요일마다 진행되었고 영화제목의 기원이 된 파티플러스라는 공연까지도 기획하게 되었다. 파티플러스는 5월1일이 노동절이고 마침 토요일이니 51개의 밴드가 다같이 모여서 공연을 하면 어떨까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밴드들의 참여를 신청했고, 51개가 넘는 밴드가 두리반이 있던 건물 전체를 활용해서 3군데 무대를 꾸미고 낮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공연을 진행했다. 파티플러스 공연이 성황리에 마무리 되면서 두리반투쟁은 더욱이 탄력을 받아 531일이라는 긴 시간동안의 투쟁을 끝내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현재, 그때의 두리반 건물은 철거되었지만, 다른 공간에서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보상을 받아서 현재도 두리반은 홍대인근의 다른 장소에서 잘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진행된 자립음악회 1회부터 감독은 촬영을 했었다. 처음부터 기획되었던 것은 아니고, 1회 자립음악회 공연정보를 보고 놀러왔던 감독과 대화중에 ‘철거당하는 철거민과,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음악인들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이야기를 듣고 감독도 ‘뭔가 이것은 촬영을 계속해야 겠다‘ 라고 느꼈다고 한다. 파티51은 두리반 투쟁 시작부터 승리 그리고 그이후의 음악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까지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두리반투쟁, 자립음악회, 자립음악협동조합, 파티51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함께 시작한 음악인들도 많은 성장을 했다고 느낀다.

*용산참사 : 용산 4구역 재개발의 보상대책에 반발해 온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30여 명이 적정 보상비를 요구하며 2009년 1월 19일 새벽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대참사다. 검찰은 사건 발생 3주 만에 철거민의 화염병 사용이 화재의 원인이었고, 경찰의 점거농성 해산작전은 정당한 공무집행에 해당한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해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은 묻지 않고 철거민 대책위원장 등과 용역업체 직원 7명을 기소한 바 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I heard the film that you starred in is now showing. Can you tell me what the film is about and how you came to be involved with it?

To tell you about Party 51, it's essential to mention the Duriban Struggle and Independent Music Product Union. Duriban was a plain and small restaurant near Hongdae. In 2011, the restaurant was notified by the building owner that it would be torn down. Service companies came in and the interior of the place got badly damaged. However, the couple who ran the restaurant decided to begin a war because they didn't want the owner to just take it way from them.

I read about this story in a newspaper and it reminded me of the brutal crackdowns that happened in Yongsan, and I thought that a thing like this should not happen again. So, I gathered some musicians in the neighbourhood to perform for Duriban Struggle, believing that people would come to see us performing and would learn what was really happening there.

After we organized that first independent concert, events continued nicely every Saturday. We decided to host another concert called Party + that was based on the title of our movie. We just discussed about our ideas for concerts for Party +. May 1st is Labor day, which was a Saturday, so the idea of gathering 51 bands together to perform came up. At first, it was a joke, so we didn't expect that such a big group of bands would want to participate. Those bands used the whole building and decorated three stages. The performance started in the day time and lasted until the next morning. Party + became very successful in bringing victory out of the struggle within 531 days.

By then, the Duriban building was already torn down, yet the married couple got enough compensation to keep running a business in another area near Hongdae. All of the concerts were recorded by a director who was concerned with the ongoing problem of the Duriban’s struggle. As a result, the director felt like he should continuously keep filming. Party 51 is a documentary movie that contains the beginning of the Duriban Struggle, how they won the victory, and shows the musicians live. I think that after we had performed a lot throughout the Duriban Struggle, independent concert and Independent Music Association, we faced enormous growth.

*Yongsan disaster

Yongsan disaster occured on the morning of January 19th, 2009 in Namildang building in Yongsan, Seoul, Korea. About thirty people held a demonstration against the government's redevelopment plan in Yongsan area 4, asking for more compensation than the government offered initially. The protesters occupied Namildang building, where a fire suddenly broke out. In all, six people died and twenty-four people got injured in the disaster. Three weeks after the disaster, the officials announced that fire was caused by firebombs that the protesters were using in the building and prosecuted seven protesters, without accusing the police for using excessive force.

....

....

두리반 투쟁을 하는 지난 2년 동안 굉장히 많은 공연을 참여하고 진행해 온 것 같다. 주말이 되면 하루에 공연하는 횟수도 적지 않은 것 같던데, 힘들지는 않은가? 공연을 거절해본 적은 없는지?

작년에는 하루 공연 횟수 5번으로 신기록을 세웠다. 그래도 요즘은 일요일에는 가족과 보내는 날로 정해 일요일에는 공연을 하지 않는 다는 원칙을 정해뒀다. 활동초반에는 그런 혼자만의 규칙도 없어서 나도 힘들고 아내도 많이 힘들어 했었다. 체력적으로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찾아주는 곳 필요한 곳에서는 연락이 오면 가급적이면 거절하지 않고 참여하려고 한다. 공연을 거절해 본적은 없다. 공연을 제안해 주는 곳이 대부분 행사취지가 동의 되는 행사들이었고, 나의 성향을 잘 아는 곳에서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앞으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마도 현대카드나, 삼성카드 같은 대기업이나 자본적인 행사에서 제의가 들어온다면 거절할 생각이다.

공연을 하면서 퍼포먼스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고, 독특한 노랫말과 멜로디가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든 이들에게 환영받지는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공연도중 제제 당한적은 없는가?

야한 퍼포먼스 때문에 제제당한 경우가 있다. 어느 행사를 갔는데 앞에 앉아있는 관객들이 초등학생이 좀 많았었다. “내숭고환자위행위”라는 노래를 하면서 퍼포먼스를 했었는데 노래나 행위의 수위가 초등학생에게 적절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학부모들이 주최 측에 항의하면서 공연도중 끌려 나온 적이 있다. 그 이후부터는 관객층을 고려하여 퍼포먼스의 수위도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

While protesting against tearing down Duriban for two years, it seems like you've participated in a lot of shows so far. Isn't it tiring for you to play so often? Do you ever refuse to be in shows?

I set the rule that I won't go to a festival to perform on Sundays so that I can spend some time with my family. At the beginning, my wife and I had a hard time coping with the situation, as there was no set rules for my free time. It's not physically hard, but I make efforts as much as I can if anyone needs me. I've never rejected offers to perform. The intention of most events are understandable and acceptable to go; in addition, offers usually come from places that know my music style. I don't think it will happen, but if a big chain such as Hyundai or Samsung asked me to do a show, I think I’d refuse.

I think that your dance moves get people's attention, and your peculiar verses and melody give a very intense impression to the audience. Yet, not everyone welcomes these actions. Have you ever been censored or restrained during your performance?

I got in some trouble for being vulgar once. I was performing a concert and there were a lot of elementary students sitting in the front. Their parents found it inappropriate for young children to watch this kind of show because I sang one of my songs, "My Sweetest Masturbation". They complained to the organizer about my gig, and I was kicked out. After that, I always try to adjust expressions based on the age group of the audience.

....

10425499_818798121516356_28148578661120303_n.jpg

....

음반제작도 많이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때까지 작업해온 음반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음반제작은 어떤 형식으로 하는지?

야마가타 트윅스터로는 싱글 3개, 정규형식이 3개의 음반을 제작 해왔다. 싱글은 대부분 두리반투쟁 전 이었고 두리반 투쟁을 하면서 노래들이 많이 정리 되었다. 그래서 정규형식으로 제작된 음반이 2011년에는 원뿔, 2012년에는 목포이동,2014년에는 바코드 테러리스트 이렇게 3개의 정규앨범을 발매 했다. 음반은 자체 제작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가끔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할 때만 근처에 연습실을 몇 시간씩 빌려서 녹음을 한다.

앨범을 구입하려고 찾아보니, 온라인으로는 판매하는 곳이 없더라. 어떻게 구입할 수 있나? 앨범을 온라인에서 판매하지 않는 이유라고 있는지?

앨범은 주로 공연장에서 판매하거나, 이메일로 문의가 들어오는 경우에만 판매를 하고 있다. 앨범을 녹음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제작까지도 혼자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대량으로 판매하는 것에 무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대량으로 판매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시간이 날 때 마다 구르부구루마를 끌고 나가서 길거리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구루부구루마는 생소하다. 설명을 해줄 수 있는가? 그렇게 혼자서 구루부구르마 활동을 하면 사람들은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인가?

구르부구르마는 레이블이나 클럽에 종속되는 현상에 대응하는 일종의 1인 시위 운동이라 할수 있다. 구루마를 끌고 주로 상수동이나 홍대일대를 돌아다니면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인데, 물론 관심은 별로 없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힘든 점이다. 구루부구루마는 2012년부터 시작했었고 앞으로도 시간날 때마다 틈틈이 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무관심하더라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일단, 지금 계속 파티51이 상영중이다. 광주, 대구에서 상영이 남아있고 상영과 관련된 공연 활동을 할 예정이다. 독립영화다 보니 상영이 쉽지는 않지만 아직 상영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공연과 연계하여 상영을 이어가려 한다. 그것 외에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사회적인 문제에 많이 관심가지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공연을 해 나갈 것이다.

..

I heard that you've been doing record production, too. What kind of records have you done so far? And what is your usual style when it comes to producing?

I've produced three single albums and three regular albums for Yamagata Tweakster. Most of the single records were made before Duriban Struggle. I arranged my songs a lot in the time of the struggle. So, my three regular records are Circular Cone in 2011, Movement to Mokpo in 2012, and Bar Code Terrorist in 2014. I mainly work at home, but if I have to make some noisy sounds for recording, I rent a practice room for a few hours.

How can I purchase your album?

My album can be purchased at concert halls or through an inquiry via e-mail. I not only record albums by myself, but I do all of the production; it's pretty impractical for me to sell them in bulk. In my spare time I sell my CDs on the street.

Can you tell me about Groove Gruma?

Groove Gruma is sort of a protest against subordination from labels or clubs. I go around dragging a gruma (a cart) in Hongdae to make a performance. Of course, people don't care about it, so it's a bit hard to accept their indifference to my gig.

Groove Gruma started in 2012, and everytime I have free time, I try to work on it. Even if people aren't interested in it, I'm not about to quit my demonstrations.

What are you planning to do in the near future?

First of all, Party 51 is still playing. I’m going to show our film in Gwangju and Daegu and there will be a performance after the screening. It’s not easy to project a short film on a screen, but I'm trying to make it work in some places where the film has not been released yet. Besides that, I will keep focusing on social issues and perform at any place that wants me.

....

Music video: Yamagata Tweakster '내숭고환 자위행위'


Find Yamagata Tweakster online here:

Facebook

Soundcloud

....Watch: 그레이 X 연 - Empty Space (feat. 김오키)..Watch: Graye X Yeon - Empty Space (feat. Kim Oki)....

....Watch: 그레이 X 연 - Empty Space (feat. 김오키)..Watch: Graye X Yeon - Empty Space (feat. Kim Oki)....

....Watch: 크랜필드 - 코발트..Watch: Cranfield - Cobalt....

....Watch: 크랜필드 - 코발트..Watch: Cranfield - Cobalt....

한국어
English